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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 후 디자인 병목이 제작에서 판단으로 이동하는 이유와 디자이너가 제작자에서 디렉터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AI 이미지 툴을 켜기 전에 브랜드의 목적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꽤 늦게 깨달았습니다. 실무에서 직접 부딪혀보니, 프롬프트를 잘 쓰는 것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훨씬 앞선 문제였습니다. 이 글은 BX(브랜드 경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체감한 AI 브랜딩의 실제 구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적용해본 프로젝트
팝업디자인 수주 프로젝트에서였습니다. 클라이언트 측이 키비주얼 기획 중에 미니어처 시안을 거론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풀지 고민하다가 오늘의집이 5월 프로모션으로 공개한 ‘로컬의 선택’ 프로젝트 글을 발견했습니다. 미니어처를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세계관을 담는 그릇으로 쓴 사례였습니다.
그 구조를 제 실무에 가져와 여러 번 검증을 거쳤습니다. 아래는 그 과정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실제로 넣은 프롬프트
세계관을 바로 이미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먼저 기획으로 내리게 했습니다.
첨부하는 뷰티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를 분석하여, 8월 썬머 스페셜 서울 성수에서 뷰티 팝업스토어를 개최한다고 했을 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BX관점으로 가장 합리적인 팝업스토어 기획안 실행 계획서를 10가지 리스트업해줘
이 문장의 핵심은 세 개입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근거로 주고, 장소와 시기를 박고, 결과물 형식을 숫자로 지정한 것입니다.
이미지 프롬프트는 그다음입니다. 기획안 10개가 나오면 그중 고른 걸 시각화합니다. 세계관을 바로 그리려고 하면 예쁘긴 한데 근거가 없는 그림이 나옵니다.
세계관 설계 : 이미지 묶음이 아니라 운영체계를 만든다
오늘의 집이 5월 프로모션 '로컬의 선택'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Higgsfield나 Kling 같은 생성형 AI 툴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지의 생동감 있는 로컬 에너지를 일상에서 발견하게 한다"는 프로모션 목적을 먼저 문장으로 못 박은 것입니다. 저는 이 순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걸 제 경험으로도 압니다. 목적 없이 툴부터 켜면 보기 좋은 이미지는 쌓이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묶이질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핵심 시각 장치로 선택된 건 '미니어처' 세계관이었습니다. 거대한 식재료나 지역 오브제를 하나의 지형처럼 배치하고, 그 위에서 작은 인물들이 움직이는 구도입니다. 단순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어서가 아니라, 브랜드 본질인 '진정성'과 프로모션 메시지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논리적 선택이었습니다. 로컬이 자칫 낯설고 먼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고객 경험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결하는 장치였던 겁니다.
세계관(World Concept)이란 단순히 분위기나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서로 다른 결과물들이 동일한 브랜드 경험으로 인식되도록 연결하는 운영체계를 의미합니다. 키비주얼에서 만든 규칙이 모션, VMD(비주얼 머천다이징) 촬영 장면, 그래픽 에셋에까지 그대로 이식될 때 비로소 캠페인 전체가 하나의 언어로 말하게 됩니다. 저도 실무에서 이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직접 겪어봤는데, 각 결과물이 제각각 완성도는 높아도 브랜드 납품물로는 쓰기 어려운 상황이 생깁니다.
아트디렉션 : 감성을 조형 규칙으로 번역하는 일
세계관을 정의한 다음 단계가 저는 실제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5월의 청량함"이나 "진정성 있는 로컬 에너지"처럼 추상적인 감도를 디자이너가 판단할 수 있는 조형 규칙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아트디렉션(Art Direction)이란 바로 이 과정을 가리킵니다. 비주얼의 방향성과 기준을 설정하고 전체 제작물이 그 기준 안에서 움직이도록 설계하는 역할입니다.
오늘의 집 프로젝트에서 이 규칙은 꽤 구체적인 형태로 정리됐습니다.
- 거대한 식재료·오브제를 하나의 지형으로 사용할 것
- 미니어처 인물들이 그 위에서 활동하도록 구성할 것
- 중심 오브제와 주변 인물의 관계를 삼각구도로 정리할 것
- 하늘색과 연두색을 중심으로 5월의 앰비언스를 표현할 것
- 카메라 소실점, 원근 그리드, 수평축을 장면마다 일관되게 유지할 것
이렇게 규칙이 명확하면 AI 결과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타일 드리프트, 즉 같은 시리즈인데 장면마다 분위기가 제각각으로 흘러버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조형 기준 없이 여러 장면을 생성하면 결과물이 쌓일수록 오히려 방향을 잡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결국 선택이 아니라 폐기 작업을 반복하게 되는 셈입니다.
또한 브랜드 본질과 캠페인 콘셉트를 구분하는 것도 아트디렉션의 핵심 판단입니다. 오늘의 집의 브랜드 본질은 '진정성'이지만, 이를 곧바로 거칠고 날 것의 이미지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프로모션의 목적과 고객 경험에 맞게 진정성을 친근한 미니어처 세계로 번역한 것입니다. 브랜드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 가치이고, 캠페인 콘셉트는 특정 시점에 맞춘 표현입니다. 이 둘을 동일하게 취급하면 매번 비슷한 결과만 반복하게 됩니다.
번역이 안 됐던 단어 — 친환경적인
감성 단어를 프롬프트로 옮기는 게 이 작업의 핵심인데, 한 단어에서 계속 막혔습니다.
"친환경적인"이었습니다.
그대로 넣으면 재활용 이미지가 나옵니다
이 단어를 그대로 넣으면 결과가 재활용 소재, 크라프트지, 흙빛 톤 쪽으로 갑니다. 틀린 해석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이엔드 뷰티 브랜드의 팝업에는 안 맞습니다. 친환경이 곧 소박함으로 읽히면 브랜드 가격대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다른 단어로 갈아끼웠습니다
"친환경적인"을 클린 뷰티로 바꿔서 풀었습니다. 같은 가치를 말하는데 시각 언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 친환경 (재활용 해석) | 클린 뷰티 (실제 채택) | |
|---|---|---|
| 소재 | 크라프트, 재생지 | 유리, 무광 화이트 |
| 색 | 흙빛, 카키 | 투명, 오프화이트 |
| 인상 | 소박함 | 깨끗함, 투명함 |
이게 아트디렉션이 하는 일입니다. 브랜드가 말한 가치를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그 가치가 이 브랜드에서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지 정하는 것입니다. AI는 이걸 대신 못 합니다. 단어를 주면 가장 흔한 해석을 꺼내올 뿐입니다.
아트디렉션 규칙은 두 줄이었습니다
규칙을 길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지킨 건 두 가지였습니다.
- 브랜드가 내부에서 확정한 팝업 슬로건과 타이틀 디자인에 맞춰 기획할 것
- 브랜드 주관 행사이므로 모든 자료는 브랜드사가 결정하고 전달할 것
둘 다 창작 규칙이 아닙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두 줄은 "어떻게 만들어라"가 아니라 "누가 정하느냐"에 관한 규칙입니다.
AI를 쓰면 시안이 빠르게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제안이 앞서나가게 됩니다. 브랜드가 아직 안 정한 걸 제가 먼저 만들어서 보여주게 되고, 그게 쌓이면 나중에 되돌리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규칙의 대부분을 결정권 쪽에 걸었습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누가 정하는지를 더 분명히 해둬야 합니다.

프롬프트 전략 : 감성 묘사가 아니라 디자인 설명서를 쓴다
이 프로젝트에서 프롬프트(Prompt)를 작성하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프롬프트란 AI 생성 툴에 입력하는 지시 문장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감성적인 묘사문이 아니라 디자인 설명서처럼 구조화됐습니다. 한국어로 의도와 미장센을 먼저 정리한 뒤, Gemini를 활용해 Higgsfield가 해석하기 적합한 영문 구조로 재구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피사체 → 배경 → 조명 → 카메라 앵글 → 텍스처 순서로 제작 요소를 분리해 입력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청량하게'라는 말은 프롬프트에 그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맑은 자연광, 하늘색·연두색 팔레트, 선명한 표면 질감"처럼 관찰 가능한 시각 정보로 분해됩니다. "고급스럽게"는 "절제된 광택, 넓은 여백, 낮은 채도, 정교한 에지 라이트"로 바뀝니다. 저도 이 방식을 실무에 적용해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같은 의도를 가지고도 추상 형용사로 입력했을 때와 시각 요소 단위로 입력했을 때 결과물의 안정성이 눈에 띄게 달랐습니다.
툴 선택도 단일 생성 도구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Gemini로 프롬프트를 구조화하고, Higgsfield로 정지 이미지의 미장센을 잡고, Kling으로 모션을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각 툴의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목적별 툴 스택을 구성하는 것이 품질과 효율 모두에서 유리합니다. Adobe 디자인 도구로 후반 보정과 타이포그래피를 처리하는 것도 이 흐름 안에 포함됩니다. 이런 워크플로우는 Nielsen Norman Group이 AI 보조 디자인 프로세스 연구에서도 강조한 바 있는데, 단일 도구 의존보다 목적에 따른 도구 조합이 실무 완성도를 높인다고 설명합니다(출처: Nielsen Norman Group).

평가 역량 :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디자이너의 판단
이 프로젝트에서 제가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초기 기획은 식재료, 로컬 상점, 로컬 장인 세 파트였습니다. 그런데 비주얼 테스트에서 당근 장면의 완성도가 높게 나오자 토마토와 당근을 독립된 장면으로 분리해 최종적으로 네 개 장면으로 늘렸고, 반대로 테이블램프 형태로 시도한 액막이명태 장면은 실내 장식품 인상이 강해 로컬 에너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제외했습니다. AI 결과물이 정답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돕는 시각적 데이터로 활용된 사례입니다.
실무에서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조직에서는 AI가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준다고 인식하지만, 실제 디자이너는 생성된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쓸 수 있는 것을 골라내고, 브랜드 일관성을 검수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데 여전히 상당한 시간을 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방식보다 검수와 수정 업무가 더 늘어나기도 합니다. AI가 업무를 단순히 줄여주는 도구라기보다 디자이너가 담당해야 할 영역을 넓히는 도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McKinsey의 AI 생산성 연구에서도 생성형 AI 도입 이후 크리에이티브 직군의 검토·판단 업무 비중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습니다(출처: McKinsey Digital). 디자이너에게 더 높은 디렉팅 역량을 요구하는 만큼, 판단과 기획에 필요한 시간도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조직 차원에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BX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핵심은 프롬프트 테크닉이 아닙니다. 레퍼런스의 특징을 언어화하고, 브랜드와 무관한 '보기 좋은 이미지'를 걸러내며, 여러 결과물에서 공통 규칙을 추출하는 큐레이션 능력입니다. 생성보다 평가에 가까운 역량이 더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쓰기 전과 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두 가지였습니다.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습니다. 기획안 10개를 놓고 시작하는 것과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은 출발선이 다릅니다.
그런데 더 의미 있었던 건 두 번째입니다. 의사결정이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오갔습니다.
왜 대화가 구체적으로 바뀌었나
예전에는 회의가 "좀 더 고급스럽게" 같은 말로 흘렀습니다. 각자 머릿속에 다른 그림을 가진 채로요.
기획안 10개를 놓고 시작하면 대화가 "3번은 아니고 7번 방향"으로 바뀝니다. 무엇을 버릴지가 명확해지니 결정이 빨라집니다. AI가 좋은 답을 줘서가 아니라, 논의할 대상을 눈앞에 놔줘서 생긴 변화였습니다.
결론
AI 브랜딩의 핵심은 결국 툴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브랜드의 목적을 언어화하고, 그것을 세계관으로 발전시키고, 세계관을 조형 규칙으로 변환한 다음에야 AI가 의미 있는 도구가 됩니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아무리 화려한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도 브랜드 자산이 되지 않습니다.
B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저도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직접 픽셀을 다루는 시간은 줄었지만 브랜드를 해석하고 방향을 설계하는 아트디렉션의 무게는 오히려 커졌습니다. AI가 실행을 더 많이 담당할수록 디자이너의 판단과 큐레이션 역량이 결과물의 수준을 가르게 됩니다. 지금 AI 툴을 배우는 것만큼, 브랜드를 읽는 눈을 함께 키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글과 이어지는 내용은 클로드로 브랜드 가이드라인 분석하기, 태닝코어 이미지 트렌드 분석, 뷰티 광고 AI 프롬프트 작성법에 정리했습니다.
브랜드 세계관을 프롬프트로 옮기는 순서를 실무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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