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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미지 툴을 켜기 전에 브랜드의 목적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꽤 늦게 깨달았습니다. 실무에서 직접 부딪혀보니, 프롬프트를 잘 쓰는 것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 훨씬 앞선 문제였습니다. 이 글은 BX(브랜드 경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체감한 AI 브랜딩의 실제 구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관 설계 : 이미지 묶음이 아니라 운영체계를 만든다
오늘의 집이 5월 프로모션 '로컬의 선택'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Higgsfield나 Kling 같은 생성형 AI 툴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지의 생동감 있는 로컬 에너지를 일상에서 발견하게 한다"는 프로모션 목적을 먼저 문장으로 못 박은 것입니다. 저는 이 순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걸 제 경험으로도 압니다. 목적 없이 툴부터 켜면 보기 좋은 이미지는 쌓이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묶이질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핵심 시각 장치로 선택된 건 '미니어처' 세계관이었습니다. 거대한 식재료나 지역 오브제를 하나의 지형처럼 배치하고, 그 위에서 작은 인물들이 움직이는 구도입니다. 단순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어서가 아니라, 브랜드 본질인 '진정성'과 프로모션 메시지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논리적 선택이었습니다. 로컬이 자칫 낯설고 먼 동경의 대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고객 경험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결하는 장치였던 겁니다.
세계관(World Concept)이란 단순히 분위기나 스타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서로 다른 결과물들이 동일한 브랜드 경험으로 인식되도록 연결하는 운영체계를 의미합니다. 키비주얼에서 만든 규칙이 모션, VMD(비주얼 머천다이징) 촬영 장면, 그래픽 에셋에까지 그대로 이식될 때 비로소 캠페인 전체가 하나의 언어로 말하게 됩니다. 저도 실무에서 이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직접 겪어봤는데, 각 결과물이 제각각 완성도는 높아도 브랜드 납품물로는 쓰기 어려운 상황이 생깁니다.
아트디렉션 : 감성을 조형 규칙으로 번역하는 일
세계관을 정의한 다음 단계가 저는 실제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5월의 청량함"이나 "진정성 있는 로컬 에너지"처럼 추상적인 감도를 디자이너가 판단할 수 있는 조형 규칙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아트디렉션(Art Direction)이란 바로 이 과정을 가리킵니다. 비주얼의 방향성과 기준을 설정하고 전체 제작물이 그 기준 안에서 움직이도록 설계하는 역할입니다.
오늘의 집 프로젝트에서 이 규칙은 꽤 구체적인 형태로 정리됐습니다.
- 거대한 식재료·오브제를 하나의 지형으로 사용할 것
- 미니어처 인물들이 그 위에서 활동하도록 구성할 것
- 중심 오브제와 주변 인물의 관계를 삼각구도로 정리할 것
- 하늘색과 연두색을 중심으로 5월의 앰비언스를 표현할 것
- 카메라 소실점, 원근 그리드, 수평축을 장면마다 일관되게 유지할 것
이렇게 규칙이 명확하면 AI 결과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타일 드리프트, 즉 같은 시리즈인데 장면마다 분위기가 제각각으로 흘러버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조형 기준 없이 여러 장면을 생성하면 결과물이 쌓일수록 오히려 방향을 잡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결국 선택이 아니라 폐기 작업을 반복하게 되는 셈입니다.
또한 브랜드 본질과 캠페인 콘셉트를 구분하는 것도 아트디렉션의 핵심 판단입니다. 오늘의 집의 브랜드 본질은 '진정성'이지만, 이를 곧바로 거칠고 날 것의 이미지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프로모션의 목적과 고객 경험에 맞게 진정성을 친근한 미니어처 세계로 번역한 것입니다. 브랜드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 가치이고, 캠페인 콘셉트는 특정 시점에 맞춘 표현입니다. 이 둘을 동일하게 취급하면 매번 비슷한 결과만 반복하게 됩니다.

프롬프트 전략 : 감성 묘사가 아니라 디자인 설명서를 쓴다
이 프로젝트에서 프롬프트(Prompt)를 작성하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프롬프트란 AI 생성 툴에 입력하는 지시 문장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감성적인 묘사문이 아니라 디자인 설명서처럼 구조화됐습니다. 한국어로 의도와 미장센을 먼저 정리한 뒤, Gemini를 활용해 Higgsfield가 해석하기 적합한 영문 구조로 재구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피사체 → 배경 → 조명 → 카메라 앵글 → 텍스처 순서로 제작 요소를 분리해 입력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청량하게'라는 말은 프롬프트에 그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맑은 자연광, 하늘색·연두색 팔레트, 선명한 표면 질감"처럼 관찰 가능한 시각 정보로 분해됩니다. "고급스럽게"는 "절제된 광택, 넓은 여백, 낮은 채도, 정교한 에지 라이트"로 바뀝니다. 저도 이 방식을 실무에 적용해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같은 의도를 가지고도 추상 형용사로 입력했을 때와 시각 요소 단위로 입력했을 때 결과물의 안정성이 눈에 띄게 달랐습니다.
툴 선택도 단일 생성 도구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Gemini로 프롬프트를 구조화하고, Higgsfield로 정지 이미지의 미장센을 잡고, Kling으로 모션을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각 툴의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목적별 툴 스택을 구성하는 것이 품질과 효율 모두에서 유리합니다. Adobe 디자인 도구로 후반 보정과 타이포그래피를 처리하는 것도 이 흐름 안에 포함됩니다. 이런 워크플로우는 Nielsen Norman Group이 AI 보조 디자인 프로세스 연구에서도 강조한 바 있는데, 단일 도구 의존보다 목적에 따른 도구 조합이 실무 완성도를 높인다고 설명합니다(출처: Nielsen Norman Group).

평가 역량 :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디자이너의 판단
이 프로젝트에서 제가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초기 기획은 식재료, 로컬 상점, 로컬 장인 세 파트였습니다. 그런데 비주얼 테스트에서 당근 장면의 완성도가 높게 나오자 토마토와 당근을 독립된 장면으로 분리해 최종적으로 네 개 장면으로 늘렸고, 반대로 테이블램프 형태로 시도한 액막이명태 장면은 실내 장식품 인상이 강해 로컬 에너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제외했습니다. AI 결과물이 정답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돕는 시각적 데이터로 활용된 사례입니다.
실무에서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조직에서는 AI가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준다고 인식하지만, 실제 디자이너는 생성된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쓸 수 있는 것을 골라내고, 브랜드 일관성을 검수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데 여전히 상당한 시간을 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방식보다 검수와 수정 업무가 더 늘어나기도 합니다. AI가 업무를 단순히 줄여주는 도구라기보다 디자이너가 담당해야 할 영역을 넓히는 도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McKinsey의 AI 생산성 연구에서도 생성형 AI 도입 이후 크리에이티브 직군의 검토·판단 업무 비중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습니다(출처: McKinsey Digital). 디자이너에게 더 높은 디렉팅 역량을 요구하는 만큼, 판단과 기획에 필요한 시간도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조직 차원에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BX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핵심은 프롬프트 테크닉이 아닙니다. 레퍼런스의 특징을 언어화하고, 브랜드와 무관한 '보기 좋은 이미지'를 걸러내며, 여러 결과물에서 공통 규칙을 추출하는 큐레이션 능력입니다. 생성보다 평가에 가까운 역량이 더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I 브랜딩에서 세계관 설계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A. 세계관이 없으면 AI로 만든 결과물들이 각각 완성도는 있어도 하나의 캠페인으로 묶이질 않습니다. 키비주얼, 모션, 공간 에셋이 동일한 시각적 문법을 공유할 때 비로소 브랜드 경험으로 작동합니다. 개별 이미지를 잘 만드는 것보다 연결되는 규칙을 먼저 설계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Q. AI 이미지 생성에서 프롬프트를 어떻게 써야 결과가 안정되나요?
A. "청량하게", "고급스럽게" 같은 추상 형용사 대신 피사체, 배경, 조명, 카메라 앵글, 텍스처를 각각 분리해서 입력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디자인 사양서처럼 구조화할수록 수정 디렉션도 구체적으로 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비교해봤을 때 결과물의 일관성 차이가 꽤 컸습니다.
Q. AI를 쓰면 디자이너 업무가 줄어드나요?
A. 제작 속도는 빨라지지만 업무 총량이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생성된 시안을 선별하고, 브랜드 일관성을 검수하고, 오류를 보정하는 과정이 오히려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직에서 AI 제작 과정도 전문적인 디자인 노동으로 인정하고 일정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BX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이너는 어떻게 다른가요?
A. BX(Brand Experience) 디자이너란 단순히 시각물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다양한 접점에서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키비주얼 한 장의 완성도보다 그것이 모션, 공간, 에셋 라이브러리까지 일관되게 확장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BX 디자인의 핵심입니다.
결론
AI 브랜딩의 핵심은 결국 툴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브랜드의 목적을 언어화하고, 그것을 세계관으로 발전시키고, 세계관을 조형 규칙으로 변환한 다음에야 AI가 의미 있는 도구가 됩니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아무리 화려한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도 브랜드 자산이 되지 않습니다.
B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저도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직접 픽셀을 다루는 시간은 줄었지만 브랜드를 해석하고 방향을 설계하는 아트디렉션의 무게는 오히려 커졌습니다. AI가 실행을 더 많이 담당할수록 디자이너의 판단과 큐레이션 역량이 결과물의 수준을 가르게 됩니다. 지금 AI 툴을 배우는 것만큼, 브랜드를 읽는 눈을 함께 키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